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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4년 10월 19일 일요일

장안 루빠 올레올레

장안 루빠 올레올레



휴가 때 한국에 다녀올 계획이라는 이야기를 
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꺼내면 어김없이 학생들로부터 듣는 말이 있다
장안 루빠 올레올레, 선생님’. 
한국어로 치면
여행 기념품/특산품 잊지 말고 사 오세요’ 정도가 되겠는데 
인도네시아의 이 올레올레(oleh-oleh)는 
그냥 기념품의 의미를 넘어서 
여행한 곳의 유명한 지역 특산물이나 그 지역에서 나는 작은 주전부리 종류로
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 
여행을 잘 다녀왔다고 보고하는 개념으로 
모두에게 돌리는 일종의 성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.

처음 족자카르타의 가자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
그 곳 강사로 있던 한 선생님께서 
한국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다녀오신 뒤
한국 슈퍼에서 파는 도시락 김을 
학과장님을 비롯하여 학과 선생님들 모두에게 하나씩 돌리는 것을 보고 
살짝 문화적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
우리네 정서로 비춰 봤을 때여행선물이라는 것이 
감사했던 한 두 분께 값나가는 선물을 드리거나 
혹은 아예 그런 것은 신경 안 쓰거나 하는 일이 더 흔한데
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 
남은 이들을 생각하며 먼 곳에서부터 선물을 챙겨오는 것이 관습처럼 여겨지고
선물을 받는 이들도 그것의 값어치를 떠나 
멀리서 자신을 위해 선물을 챙겨왔다는 사실을 더 크게 여기고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

사실 나는 한국에 휴가를 갈 때
가족들의 선물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 
습관처럼 공항 면세점에서 화장품이나 주류 같은 것들을 사서 
의례적으로 드리는 일이 더 잦았던 것이다
인도네시아에서 나는 희귀한 특산물이나 독특한 먹거리를 챙겨 가서 
가족들에게 한 번 쯤 선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다
내 딴에는 면세점에서 산 것들이 
더 값나가고 깔끔하고 좋은 것이니까 하는 핑계로 말이다

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학생들, 친구들, 선생님들은 달랐다
어디 가까운 도시라도 잠시 나들이를 다녀오거나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돌아올 때면
그 지역에서만 난다는 젤리, 튀김, 말린 과일, 초콜릿, 수공예품, 엽서, 천가방 등을 
기어코 내게 선물해 주며 
그간의 여정을 한 보따리씩 이야기로 풀어내곤 했다
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워낙 나라가 크고 지역마다 기후, 특색이 다 달라서 
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유명한 것들이 많다며 
여행지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도 함께 제공해 주었다

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몇 년 살아본 나는 
족자카르타에 박피아라는 빵이 그리 유명하고


발리에 우유파이가 인기가 좋으며


스마랑 지역에 반등이라는 가공 생선이 맛있고


메단의 꾸에 두리안과 


람뿡의 커피가 알아준다는 사실을 
이들로부터 알게 되었다


이 밖에도 인도네시아 친구들의 
넘쳐나는 성의와 소소한 재미 
그리고 정을 느낄 수 있었다

이번에 한국을 다녀온 나는 
학교 친구들에게 맛 보여줄 인삼차와 홍삼캔디
학생들에게 나눠줄 한복 인형 휴대폰 줄과 
K-POP 가수들이 잔뜩 실린 엽서들을 고이고이 챙겨왔다
물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
한국의 우리 가족들 안부와 여러 소식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 주며 
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

한국인은 선물에 인색하거나 
선물은 반드시 값나가고 좋은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안고 있는 것 같다

하지만 이들은 젤리 한 박스, 끄루뿍 한 봉지도 서로 나눠 먹으며 
마음을 나누고 따뜻하게 웃을 줄 안다
선물의 가치는 가격이 아닌 
정성이라는 이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